그는 멍하게 있을 때가 많았다. 처음 체육관에서 선배 대 후배로 만나 인사를 나눌 때도 귀에 무언갈 잔뜩 끼고 있더니, 반에 가끔 찾아갈 때면 헤드폰을 끼고 책상 위에 엎드려 있기 다반사였다. 처음에는 오이카와가 자신이 무슨 말만 하면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막고 고개를 돌리기에, 그럴 정도로 자신을 '혐오'하나 싶어 주눅이 들었던 때도 있었다. 코트 위에서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면서도 네트 저 너머로 공을 넘겨보내는 그에게, 공 하나를 품에 꼬옥 안고 다가가면 하찮다는 눈빛으로 늘 내려보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또 연습이 끝나고 저녁 9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갈 때면, 한층 더 부드러운 얼굴로 옅게 웃으며 손깍지를 끼워주었다. 카게야마는 그 든든하고 커다란 손을 꼭 잡고 있으면 세상 어디든지 쉬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기본적으로 오이카와는 배구를 좋아해서 늘 웃었지만, 경기 중 코트 위에 서 있는 그의 얼굴 위에는 셀 수 없이 많고 다양한 감정이 공존했다. 서브 성공에 기뻐서 웃다가도 안면 근육은 금세 형태를 바꾸고, 두 팔 벌려 환호를 지르다가도 눈썹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아프단 표정을 짓곤 했다. 카게야마는 관중석에 앉아 그런 그를 지켜보며 작은 두 손에 큰 물병 하나를 움켜쥐고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출렁출렁. 어, 이거 오이카와 선배 얼굴 같아. 그의 낯에 머무르는 수많은 감정은 여기저기 출렁이며 서로 섞이곤 했다.


  오이카와에게 이 세상은 물병 속 먹는샘물의, 그 이상이었다. 오히려 넓디넓은 태평양의 소금물도 그의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출렁임보다 더 많은 것들이 오이카와의 세상에는 가득하였으니까. 중력이든 바람이든, 무언가에 의해 저 먼바다에서 만들어진 작은 기운이 이리저리 쭐렁이다 결국 해안으로 밀려 다가와 덮치는 것처럼, 오이카와는 언제나 세상 모든 색깔이 본인의 몸을 조금씩 갉아먹다 끝내 정복해버리는 것 같이 느껴졌다.


* * *


  어릴 때 배구클럽에서 악명 높았던 늙은 코치에게 무릎 꿇고 꾸중을 듣고 있으면 그의 목소리는 아주 쨍한 파란색으로 오이카와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적셔오곤 했다.

  그 푸른 소리가 날카로운 바늘의 모양으로 후두두 떨어지는데, 눈이 실 정도로 번쩍였다. 그런데 잔뜩 혼나고 나서 집에 돌아가며 친구 이와이즈미에게 파란색 바늘에 관해 물었을 때, 그 애는 아무렇지도 않았다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냐 답했다. 너, 진짜 그런 게 보여? 응, 지금 이와 쨩 목소리는 차분한 초록색이야. 그래서 보고 있어도 눈이 하나도 안 아파. 결국, 본인의 문제였다. 뇌 기능 장애였다.


  색청色聽이라고 하는.


  진단을 받은 날 이후로 이와이즈미는 언제나 본인의 색을 물었다. 역시나 부드럽고 차분한 초록색이었다. 이와이즈미의 눈동자 색과 비슷한. 

  이와이즈미와 주변 사람들은 그 능력을 활용해 미술이나 음악을 배우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하곤 했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음악으로 만들면 참 근사할 것 같다고. 하지만 오이카와에겐 세상 어느 색도 큰 흥미를 주지 못했다.


  배구가 좋았다. 어느 것도 배구만큼 흥미롭지 않았다. 애초에 흥미라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매번 코트 위에서 좌절할 뿐이었다.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현실, 자신이 애초에 대단한 재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비운. 하지만 그보다도 더 비참했던 것은, 코트 위에서 언제나 웃으며 배구할 수 없게 만드는 본인의 또 다른 감각 그 자체였다.


* * * 


  손바닥으로 공을 쳐내면 형광빛의 노란색이 산란하듯 눈 앞에 흩어졌다.

  그리고 옆에서 부원들이 실수를 신경 쓰지 말라던가, 날아오는 공이 제 공임을 외치면 그것이 시시각각 다른 색과 모양 흩어져 시야를 가렸다. 이 색으로 보였다가도 저 색으로 보이기도 하고, 바늘같이 후두둑 쏟아지기도 하면서 공중에 두둥실 부양해서 오랫동안 눈앞에 머무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오이카와는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인상을 잔뜩 쓰고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어 눈앞의 것들을 떨치려고 노력했다. 손을 휘휘 저어 보아도 특히 안개처럼 퍼진 색들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정신 사납게 구는 오이카와에게, 선배들은 어떻게 보면 너는 정말 산만하고 경박해 보인다며 흉을 봤다.


  자신들은 본인이 내는 소리가 얼마나 탁하고 어두침침해서 보기 흉한 색인지도 모르면서.


  그러다가 언젠가 처음으로 자신이 보는 색이 예쁘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평소처럼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헤드폰을 끼고 등교하는데도, 어디선가 갓 어린 아이의 것을 벗어난 맑은 목소리가 귀에 꽂혀 들어왔다. 귀를 막고 있는 헤드폰에 한 번 걸려져도 여전히 청아한 그 울림을 듣자 숨이 턱하고 막힐 정도로 행복해서, 급하게 헤드폰을 벗자 오이카와의 세상에 정말 아름답게 빛나는 분홍빛의 꽃잎이 가득했다.

진짜 꽃잎은 아니었다. 맑은 소년의 목소리가 만들어낸 분홍색 꽃잎 모양의 소리였다.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색을 만난 오이카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손을 뻗어 그 소리를 잡아보려 했지만, 그것은 손바닥에 닿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러고선 그 아이의 재잘대는 소리를 따라, 꽃봉오리가 때맞춰서 터지듯 하나둘씩 새로운 소리가 바람을 타고 휘날리는 것이었다.


  - 아.


  아름답다. 오이카와는 처음으로 그 색의 정확한 이름을 알고 싶었다.


  아이의 이름은 카게야마 토비오였다. 어떻게 된 인연인 건지, 중학교의 후배로 들어와 또 같은 배구부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귀여운 아이구나 싶었지만, 카게야마가 입을 열어 자기소개를 하게 되자 눈앞에 마구 흩날리는 벚꽃잎이 여태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인연을 속삭였다. 오이카와는 귀에 끼고 있던 귀마개를 빼고 맨 귀와 맨눈으로 그 아름다움을 느꼈다. 아. 참 다행이다. 나는 너의 목소리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감각으로 느낄 수 있어. 남들이 보기엔 그저 잔 먼지만 날릴 허공이었지만, 오이카와에게는 예쁜 분홍색이 가득한 봄이었다.


  "토비오. 나에겐 아주 큰 병이 있어."

  "뭔데요?"

  "네 목소리가 보여."

  "소리가요?"


  오이카와는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이와이즈미와 가족 외의 사람에게 본인의 또 다른 감각에 대해 이야기했다. 응. 지금 네가 내는 발자국 소리도, 옆집 강아지가 짖는 소리도. 지금은 밤이라 잘 보이진 않지만 낮에는 여러 소리가 너무 크게 겹쳐서 앞이 잘 보이지가 않을 때도 있어. 그 말을 듣고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사준 우유를 입에 물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갸웃거리기만 했다. 하나하나 궁금한 걸 물어오기에, 오이카와는 한숨을 크게 포옥 쉬며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어두운 길 위의, 흐릿하게 빛을 내리는 가로등 아래로 지나갈 때 마다 카게야마의 분홍색 꽃잎이 하나둘씩 두둥실 떠올라 허공을 가로질러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그게 어떻게 보이는데요?"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이야기했다. 음. 이 오이카와 씨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그랬는데, 코치님한테 혼나는데 꾸중이 막 쨍한 파란색으로 바늘 모양으로 바닥에 꽂히는 거야. 나는 그게 아주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이와 쨩은 또 안 그렇대. 그냥 내 문제였어. 들리는 것이 눈앞에 보이는 게.


  "그럼 눈 아프지 않나요?"

  "아프지, 엄청. 눈물도 나고. 안 보여서 답답하기도 하고."


  가장 힘들 때는 비가 오고 천둥이 칠 때였다. 빗방울이 바닥과 지붕 위에 떨어지며 내는 소리는, 눈을 수만 개의 송곳으로 하나하나 찔러오듯이 콕콕 짓이겨 오고, 천둥이 한 번 크게 칠 때 마다 이제 여기서 죽을 수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짙은 파란색의 소리 덩어리가 몸을 향해 날아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초등학교, 집, 배구 클럽 등의 작은 사회에서만 있었기에 그런 현상을 겪는 일이 거의 적었으나, 나이를 먹으며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곳에 갈 때마다 고비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찾아오곤 했다. 배구부에서 본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선배들이 하는 말은 언제나 검고 짙은 물안개의 모습으로 시야를 가렸다. 경기에서 패배했을 때 바닥에 주저앉아 있으면 다른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함성과, 코트 위를 이리저리 오가는 신발들이 내는 괴로운 소음이 항상 작은 모래 알갱이의 모습으로 제 몸 위에 쌓여 묻어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가득.


  "그럼 많이 힘드셨겠네요."

  "에휴. 오이카와 씨는 늘 힘들어. 헤드폰 끼고 있는 것도, 귀마개 하고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지."

  "밤에는 잘 안보입니까, 그러면?"

  "보이긴 보여. 낮은 건 어두워서 잘 안 보이고, 네 목소리 정도로 높은 건 잘 보이고."


  언제나 소리의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었다. 제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사방에서 쏟아져 오는 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연할진 몰라도, 오이카와에게는 또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태평양 어딘가의 잔잔한 부분도, 그 속은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고 또 혼란스러운 것처럼, 오이카와의 세상도 그랬다. 언제 어디에서 이상한 모양과 색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사실 지금도 많이 무서운데 꾹 참고 있어. 늘."

  "그렇습니까."


  카게야마는 우유 팩 속의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을 쪼옥 빨았다. 하지만 더 빨아올릴 것이 없어 공기 새어 나오는 소리만 가득할 뿐이었다. 카게야마는 그 괴성에 화들짝 놀란 듯 토끼 눈으로 오이카와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귀에도 끔찍할 이 소리는 오이카와에겐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제 목소리는 어떻습니까?"


  카게야마는 본인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단 한 번도 마음에 드는 목소리를 만난 적이 없다는 오이카와에게, 자신이 내는 이 당연한 소리는 어떤 괴상한 모습으로 보일까 걱정되기도 했다. 언제나 코트 위에서 배구를 즐기면서도 인상을 쓰는 그가, 어딘가 아픈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런 이유에서 그랬다니. 본인이 그 처지가 되어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오이카와는 걸을 때도 심지어 조심히 걸으려고 노력했던 걸 보아선 아마 색청이라는 것은 일상에도 큰 지장을 주는 게 분명하다고 카게야마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제 목소리는 어떻나요. 오이카와 씨. 카게야마는 그의 말을 기다리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다.


  "음."

  "네?"


  네 목소리는 예쁜 색이야. 예전에 네가 입학하기 전에 널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네 얼굴은 못 보고 얼핏 목소리를 보게 되었어.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지나가는 너의 까만 머리카락 위로 정말 예쁜 연분홍색의 꽃잎이 날리는 거야. 추운 겨울이라 꽃이 필리가 없었는데도 어디선가 꽃잎이 자꾸만 날아왔어. 그런데 그게 네 목소리였던 거야. 너무 예쁘고 아름다운 색이 눈앞에 가득했는데도 나는 그게 당연하게 목소리의 모양일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어. 늘 봤던 건 무섭고 아픈 것들이었으니까.


  "분홍색 꽃잎..."

  "응."

  "너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카게야마 토비오 입니다." 라고만 얘기하는데 또 그 분홍색이 내 시야에 가득해서 정말 행복했어."


  오이카와는 정말 행복했다는 표정으로 카게야마를 끌어안았다. 카게야마는 그의 품에 안기기 전에 그의 표정을 본 것이 단 1초도 되지 않았지만, 그의 행복한 표정이 눈앞에 어른거린다고 생각했다. 그의 가슴에 안겨 있으면 눈앞은 잔뜩 까만데. 오이카와 씨가 보는 세상은 이렇게 까맣고 어둡고, 또 밝고 쨍한 것들이 가득하겠지. 그런데 자꾸만 그 까만 품 안에 안겨 있어도 오이카와의 행복한 미소가, 보고 있지 않아도 떠오르는 것이었다. 어. 혹시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 미소를. 아. 카게야마는 갑작스레 무엇이 생각났다는 듯 오이카와의 가슴팍을 밀쳐내었다.

  

  "응?"

  "잘 알았습니다!"

  "뭘?"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이카와 씨 안녕히 가세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러고선 상체를 푹 숙여 큰 동작으로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그렇게 어두운 밤에도 카게야마의 목소리는 분홍색으로 빛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높은 소리라 쨍하게 보였다. 아주 살짝. 왜 높은 목소리를 내는 걸까. 오이카와는 주머니에서 귀마개를 꺼내 들어 꽂고서 집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제 앞을 가리지 않아 좋은 밤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여전히 오이카와는 여러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등굣길을 걸었다. 옆에서 나란히 걷는 카게야마는 오늘따라 유난히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했다. 조심히 말을 붙여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두 손으로 꼭 막고 걷는 것이었다. 너, 왜 그러는 거야? 그렇게 물으면 입을 막은 두 손을 떼지도 않고 그 동그랗고 새침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토비오 쨩.


  카게야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거리는 괴로운 것들로 가득했다. 자동차가 지나가며 내는 경적 소리는 옅은 회색의 반달 모양으로 이리저리 춤을 췄고, 바쁘게 출근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는 어떨 때는 원색의 강렬한 공 모양으로 또 어떨 때는 풀이 죽은 파스텔 톤의 먼지로 흩날렸다. 아, 눈 아파. 귀 아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와 있을 때는 귀마개를 쓰거나 헤드폰을 쓰는 것이 실례가 된다 생각해서 늘 피했는데, 오늘만큼은 안 되겠다 싶어서 가방을 열어 헤드폰을 찾아 뒤적거렸다. 그런데.


  "오이카와 씨."

  "아, 어..."

  "오이카와 선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카게야마가 크게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오이카와는 헤드폰을 찾다 말고 고개를 들어,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눈앞은 아까 전과 다르게 온통 분홍색으로 가득한 것이었다. 정확하게 이름을 모르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눈부시고 황홀해지는 그런 갖은 분홍색. 오이카와는 조금 전과는 너무 달라진 풍경에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놀란 표정으로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이제 괜찮죠?"

  "뭐?"


  카게야마는 더 큰 목소리로 오이카와에게 물었다. 괜찮습니까! 그렇게 한 음절씩 공기를 타고 울려 퍼질때마다 수천 개의 밝은 분홍색의 벚꽃잎이 공중에 환하게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길을 걷던 사람들은 저 학생들이 왜 저러나 싶은 표정으로 흉을 보았지만, 오이카와에겐 그들의 날카로운 음성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로지, 본인 곁에서 환하게 웃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작은 아이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만들어 내는 3월의, 찬란한 벚꽃잎들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하나도 안 무섭죠?"

  "......"

  "오이카와 씨의 세상에는 분홍색이 가득해요."


  아. 아. 그랬구나. 오이카와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나를 위해서 이렇게 소리를 아낀 거구나, 아침부터. 더는 그렇게 큰 소리로 얘기하지 않아도 오이카와의 시야에는 분홍색이 가득했다. 아침부터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참아온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삭막하고 무서운 이 거리 위에 가득 흩뿌려졌다. 비록 손에 닿진 못해도, 닿는다고 해도 금세 사라진다고 해도.


  "이제 웃을 수 있으신 거죠?"


  다행이었다. 이 예쁜 미소의 이유를 본인만 알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이 예쁜 아이의 목소리를 오로지 오이카와 토오루, 자신만이 '볼 수 있다'는 것도.


  "응. 정말 다행이다."


  자신이 가진, 남들과는 다른 이 감각이 오늘따라 매우 감사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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