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 왔다. 스가와라는 인기척 없는 좁은 골목 사이로 뛰어들어갔다. 행여나 뒤에서 누가 따라오고 있지 않을까, 위에서 누가 감시하고 있진 않을까 싶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다 보면서 달렸다. 언제나 상자들이 가득 쌓여있는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이십 미터 정도만 가면 벽이 하나 보이는데, 그 벽에 올라서서 오른쪽 건물의 벽을 보면 기지가 있는 3층으로 향하는 사다리가 보였다. 스가와라는 다시 한 번 더 이리저리 살펴본 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늘 이런 사다리를 오를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이 히나타의 순간이동이라던가 니시노야의 염력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사다리를 타고 3층에 다다라서는 오른손을 옆으로 뻗어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큼의 틈을 찾아 더듬었다. 이쯤이었는데… 하루에 몇 번이나 오가는 곳이긴 하지만 한 번에 문을 찾는 건 여전히 버거운 일이었다.


  - 아, 찾았다.


  손가락으로 그 틈을 꾹 하고 누르자 벽이 안쪽으로 밀려들어 가고 금세 스가와라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공간이 생겼다. 그 사이로 들어서자 다들 벌써 밥을 먹고 있는 건지 음식 냄새가 콧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오늘은 피자랑 스파게티인가 보네. 스가와라는 밀려 들어온 벽을 살짝 밀어 다시 원상태로 복귀시키고선 복도를 따라 걸었다. 천장이 낮아 고개를 숙이고서 스가와라는 좁은 복도 양쪽에 가득한 책들을 둘러보았다. 오늘은 이걸 읽어볼까. 그중에서 오늘 밤에 읽을 것을 하나 꺼내 들었다.


  - 선배!

  - 스가, 왔어?


  스가와라가 방에 들어서자 인기척을 느낀 팀원들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반겼다. 너네 방금 전에 나 다른 사람인 줄 알고 공격하려고 했었지. 쓰고 있던 후드와 모자를 벗으며 스가와라가 농담을 던지자 니시노야가 찔린 건지 크게 놀라면서 입에 물고 있던 피자를 뱉었다. 으, 노야 씨 더러워. 뭐, 류! 늘 경계해야하는 건 맞잖아! 스가와라는 후배들의 사소한 말다툼을 들으며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환하게 웃었다.


  - 다들 맛있게 먹어. 

  - 스가와라 선배는 안드세요?

  - 응. 카게야마는 어딨어?

  - 아직 침대에 누워있어요.


  그렇구나. 스가와라는 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 팀원들을 뒤로하고 거의 무너질 듯한 계단을 위태롭게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삐걱대는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면서 스가와라는 옆에 있는 작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낮은 경치를 감상했다. 시야의 앞에는 낮고 허름한 건물이, 저 먼 곳에는 높고 눈이 부신 마천루가 즐비해있었다. 지금 이들이 지내고 있는 곳은 휘황찬란하면서도 거대한 빌딩이 가득한 이 도시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빈민가 구역이었다. 이 구역에선 더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건물도 많았는데, 그래서 스가와라와 팀원들은 몇 년 전에 폭파사건으로 기지를 잃고 이곳으로 옮겨와 살게 된 것이었다. 어떻게 말하면 남의 빈 둥지를 대신 차지해버린 까마귀였고, 또 다르게 말하면 법을 위반한 채 몇 년 동안 무단거주하고 있는 범죄자였다. 만약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정말 큰일 나겠지. 스가와라는 창문을 닫고 4층으로 향했다.


  기지의 전 층에서 가장 좁은 4층에는 이층 침대 두 개와 책상만이 있었다. 카라스노 3기 남자 후배 넷이 쓰는 방이었다. 빛 하나 들지 않는 방 안은 매우 고요했다. 그저 카게야마가 훌쩍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눈치를 살피다가 침대 한쪽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고선 옅은 빛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침대에 누워있던 카게야마가 몸을 일으켜 스가와라를 향해 돌아보았다.


  - ……오셨어요.

  - 응. 카게야마, 뭐 해. 아직까지 울고 있는거야? 


  스가와라는 그 말을 하면서 천장 어디엔가 달려있을 전구를 향해서 빛 한 줄기를 쏘았다. 그러자 전구 속 필라멘트가 빛을 내기 시작하면서 방안이 금세 밝아졌다. 스가와라는 전구를 한 번 올려다보고 다시 시선을 카게야마의 얼굴로 옮겼다. 환한 전구 아래에서, 이번에는 카게야마의 표정과 모든 것이 훤히 다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울었던 건지 눈가는 물론이고 코 끝까지 빨개져서는 스가와라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입고 있던 후드티를 벗어서 각종 서류로 어지러워진 책상 위에다가 던져 올리고선 카게야마가 누워있는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카게야마는 알아서 벽쪽으로 몸을 옮겼다.


  - 카게야마.

  - 네.

  - 네 힘은 물론 대단한 거지만 말이야. 결국 누군가의 목숨을 댓가로 사용하기에는 힘든거라 생각해.


  스가와라는 카게야마를 끌어안아 자신의 가슴팍에 그의 얼굴이 닿도록 했다. 카게야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안겨 있기만 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한참 동안 아무 대화가 없었다. 그저 카게야마가 훌쩍이는 소리만 가득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에게 그 이상의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도 잘 알지 못했고, 막상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카게야마가 그걸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싶었다. 카게야마는 자존심이 세니까 말이야. 늘 자신이 가진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지.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등을 도닥이기만 했다.


  그는 두 살 어린 후배였다. 이 그룹의 시작은 사와무라, 아즈마네, 시미즈 그리고 스가와라 본인까지 합쳐서 넷이 만들어냈다. 이렇게 세 명이 1기, 한 살 어린 다섯 명의 후배들이 2기, 그리고 카게야마를 포함한 다른 다섯 명이 3기였다. 카게야마는 마지막에 합류한 다섯 명의 후배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 물론 그룹, 카라스노의 14명이 갖고 있는 능력 중에서도 아마 가장 세겠지만. 그는 키도 꽤 큰 편이었고, 체력도 좋아서 다이치의 모든 지시와 명령에도 쉽게 지치지 않았다. 처음 카게야마를 본 순간 스가와라는 느낄 수 있었다. 저 애는 단순히 평범한 목표만을 가지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고. 그 애가 들고 있던 피묻은 티셔츠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카게야마가 가진 주主능력은 시간 조절이었다. 처음에 발현되었을 때는 쉽게 조종할 수 없었던 것이 오랜 훈련을 통해 이제는 퍽이나 섬세한 시간 조절까지 가능했다. 초단위로도 충분히 조절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다이치가 주먹 한 번을 상대방에게 날렸을 때 그것이 엇나갔다면, 카게야마의 능력으로 시간을 재빨리 과거로 되돌려 제대로 된 펀치를 날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소리다. 주로 카게야마는 기지 안에서 키노시타의 도움으로 모두가 나가 있는 현장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뒤 재빨리 시간 조절을 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게야마의 이 무시무시한 능력엔 큰 결함이 있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범위는 한정적이었고, 미래로는 갈 수 없어 오직 과거로만 돌아갈 수 있으며, 생명의 잉태와 출산은 무효시킬 수 있었지만 죽음 앞에서는 그의 능력은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어느날 카게야마는 모두가 있는 앞에서 큰 목소리로 선언했다.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자신의 능력을 임무 외에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스가와라와 다이치를 포함한 모든 팀원들은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카게야마의 능력에는 더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기 때문인데, 그가 시간을 돌릴 때마다 생기는 오차의 일부가 그의 생명에서 몇 초, 몇 분씩 깎여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설령 몇 년을 돌릴 수 있다고 해도, 그가 돌려버린 그 시간은 카게야마의 생명을 더 빠르게 깎아내려갈 뿐이었다. 그렇게 반대를 했더니 카게야마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모두의 말에 따르겠다고 얘기했다.


  스가와라는 안겨 있는 카게야마의 등을 두드려주다가 문득 그 때를 떠올렸다. 카게야마 만이 있던 빈 기지에, 현장에서 잔뜩 다쳐서 피 범벅으로 돌아온 자신에게 안겨 울던 카게야마에게 고백을 했던 그 날이. 그리고 그 날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자신이 카라스노에 들어온 이유를, 그리고 자신이 살려야하는 사람에 대한 것들을. 분명 그의 모든 말은 진심이었지만 카게야마는 단 한 번도 그 사람에 대한 확실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가 누구인지, 그와 무슨 관계였던 건지도.


  카라스노의 리더는 사와무라였지만 두 사람이 사귀고 난 후부터 카게야마는 모든 일을 스가와라에게 털어놓곤 했다. 그럴 때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를 말릴 뿐이었다. 네가 그렇게 네 능력을 함부로 써버리면 네 생명은 어떻게 되는건데? 이미 죽은 사람 살리려고 너는 네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굳이 그래야 하는거야? 하지만 매번 그와 관련된 일로 스가와라가 언성을 높일 때마다 카게야마는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스가와라의 품에 안기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모든 사건의 발단은 사흘 전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팀원들이 발견한 건, 이미 생명을 다해 싸늘해진 누군가의 주검이었다. 연락을 받고 미루다가 제 때에 찾아오지 못해서 생겨버린 실수였다. 많이 다친 상태일 뿐이었다면 야치의 치유 능력을 이용해 어떻게든 살릴 수 있었을텐데, 누군가가 제 시간에 그 사람의 연락을 받지 못했기에 그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다. 그 때 팀원 중 누군가가 말했다. 이번 일은 우리의 잘못이니까 카게야마가 시간을 돌려서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택해보자. 모두들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카게야마는 흔쾌히 허락했다. 하지만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얼굴에서 어째서인지 묘한 씁쓸함이 올라왔다고 생각했다.


  그 사건이 바로 카게야마가 지금 이렇게 침대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 이유였다. 카게야마가 몇 번이나 시간을 돌렸지만 매번 현장에 도착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공간이동이 가능한 히나타가 정확히 시간을 맞춰서 이동을 한다고 해도 그가 도착했을 때 의뢰자는 어느 형태로든 죽어있을 뿐이었다. 모두들 허무했다. 카게야마의 생명력을 써서 이렇게 돌아왔는데 결국 이미 일어나버린 인과관계는 어떻게든 바꿀 수 없구나. 스가와라는 그 때도 카게야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씁쓸한 표정이었다.


  - 카게야마.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눈치를 살폈다. 카게야마는 여전히 게슴츠레 눈만 뜨고 스가와라를 끌어안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팔을 뒤로 뻗어 전구의 빛을 살짝 희미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환하던 방안이 조금 어두워졌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이름을 한 번 불렀다가, 카게야마의 얼굴을 끌어다가 입을 한 번 맞췄다. 카게야마는 그런 스가와라의 행위에 아무 감흥도 보이지 않았다.


  - 그런 표정 지으면 키스하는 나는 뭐가 돼. 카게야마, 좀 맞춰줘.


  스가와라가 그렇게 말하자 카게야마는 침대에 바로 누워서 스가와라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제야 스가와라는 인상을 펴고 환하게 웃으면서 카게야마의 입술에다가 다시 제 입술을 포개었다. 잊자, 다들 지나간 건 잊기로 했어. 여기서 네 능력을 더 쓴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채로 남는거야.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몸 위에 올라타서 다시 얼굴과 얼굴을 맞대었다. 카게야마는 그 때와 똑같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스가와라 씨.

  - 응?

  - 이 키스, 지금 몇 번째 하고 있는건지 아세요?


  스가와라는 갑작스런 카게야마의 질문에 방금 전까지 자신이 카게야마에게 몇 번 입을 맞췄던건지 세어 보았다. 세 번? 그 말을 듣고 카게야마는 인상을 잔뜩 쓴 채로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타있는 스가와라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 스가와라 씨는 아세요?

  - 뭘?

  - 이게 지금 몇 번째 돌아온 세계인 건지.


  몇 번째 돌아온 세계, 라니.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몇 번째. 돌아온. 그 말에 스가와라는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거지, 카게야마는?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다섯 번 시간을 돌렸어요. 5년 전 그 때로.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방금 전에 한 이 키스를 벌써 여섯 번이나 한거죠. 이 대화도 여섯 번이나 했구요.


  - 너…

  - 네, 아무와도 상의하지 않고 저 혼자 선택한 일 입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몸 위에서 조심히 내려와 침대 끝에 걸터 앉았다. 그러고선 방금 전에 자신이 들은 말이 무엇인가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다섯 번 시간을 돌렸어요. 5년 전 그 때로. 머릿속에서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울려퍼지는 그 소리가 진득하게 서로 엉켜서는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카게야마는 지금 대체 몇 년을 자신의 삶에서 잃어버린 것인가. 스가와라는 카게야마를 뒤돌아보았다. 카게야마는 여전히 침대 위에 누워서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 모두들 알지 못하죠. 저 때문에 자신들이 이 시간을 다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나는 또 다시 이것들을 경험하면서 모든 것을 기억하는데, 나 말고 아무도 알지 못해요. 모두의 기억 속에 그들이 다시 살고 있다는 사실 같은 건 아예 존재하지 않아.

  - …….


  그리고 스가와라 씨도 모르시겠죠. 제가 이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왜 그렇게 돌아가고 싶어하는건지. 그 사람이 대체 누구길래 내가 그렇게도 되찾고 싶어하는 건지. 내게 얼마나 소중했으면 자그마치 30년이라는 시간을 내 인생에서 없애버리면서 까지 그러는 걸까.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저, 이 말도 5년 전에 했었어요. 또, 10년 전에도 한 번 했었고. 그리고 우리 서로 만난지 5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저는 당신을 벌써 햇수로만 30년 넘게 봤어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당신과 사랑하면서 여러 감정을 느끼고, 모든 것을 하면서도 왜 제가 여전히 이 시간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지…… 아세요? 카게야마의 목소리에 점점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온 몸을 감아올라가고 있는 그 축축한 기운이 카게야마의 입 끝 까지 차올라서는 카게야마의 목소리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놀란 표정으로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카게야마는 여전히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 전 언제나 두려워요. 셀 수도 없이 이어져 온 이 타임루프 속에서 난 잃은게 너무 많아요. 모든 것을 반복하고 이 시간의 처음으로 돌아가면 또 그 사람이 죽는 장면 뿐입니다, 항상. 그런데 그럴 거란 걸 알면서도 저는 또 이 모든 걸 반복해요. 설마 하고. 또 설마 그 사람이 죽지 않게 내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기대 때문에. 그러고 저는 또 고통받아요. 다시 또 모든 일과 제 기억 사이에 생겨버리는 이 오차에 저는 늘 힘들어요.


  카게야마는 한 손으로 본인의 눈을 가린 채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였다. 평소에 말수가 적은 편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카게야마가 스가와라에게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 고백을 했을 때도 잠깐 부끄러워할 뿐이었고, 그 외에 스킨십과 모든 것들을 할 때도 카게야마는 그저 가만히 따라올 뿐 스가와라가 늘 리드했었다. 항상 훈련과 일에만 매진하는 카게야마였던지라 감정 표현엔 서툰줄 알았는데……


  - 나 그런데 말이죠, 스가와라 씨.

  - 응.

  - 늘 두려워요.

  - 뭐가?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말을 들으면서 천장에 달려있는 전구를 올려다보았다. 옅은 빛이 방을 비추고 있었다. 손을 들어올려 그 빛을 거두었다. 방안이 어두워졌다. 스가와라는 누워서 울고 있는 카게야마의 옆에 누워서는 카게야마의 가슴 위에다가 손을 올렸다. 카게야마가 훌쩍이며 거친 숨을 내쉬면서 가슴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 언젠가 그 사람을 잃었던 것처럼, 언젠가 스가와라 씨도 잃을 것 같아서.


  어둠 속에서 카게야마는 그 말을 하고서 또 다시 울기 시작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가 의외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구나 싶었다. 언젠가 특별한 초능력이 생겨버린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그룹인 카라스노는 초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버려진 것들'이라고 불리웠다. 그렇게 늘 욕을 먹으면서도 사람들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카라스노의 팀원들은 매번 감정에 치우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항상 그랬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행동했던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카게야마였다. 그저 이 능력으로 누군가를 구하겠다는 팀의 모토에만 맞춰서 사는 줄 알았는데.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의외의 모습이 웃어야하나, 같이 슬퍼해주며 울어야하나 알 수 없었다.


  - 카게야마.

  - …….

  - 그래서 그렇게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또 다시 상처 받으면서도 그렇게 시간을 돌아갔던 이유가 뭐야?

  - …….


  카게야마는 스가와라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스가와라가 내어준 팔에 자신의 머리를 대고 품에 안겨올 뿐이었다. 스가와라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자신의 연인을 품 안에 끌어안으면서 또 다시 물었다. 


  - 30년 동안 나를 보면서도, 늘 나를 잃을까봐 두려웠던거야?

  - …….

  - 결국 돌아간건 그 사람 때문이지만, 30년 동안 나와 지내면서 단 한 번도 헤어지지 않고 함께 해줬다는 것 그 자체로 나는 행복해, 카게야마. 정말 다행이다. 그 긴 시간동안 내가 너를 계속 사랑할 수 있어서.


  스가와라는 손을 들어올려 카게야마의 앞머리를 쓸어주었다. 얼마나 열을 내며 울었던건지 머리카락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머리를 쓸어주며 스가와라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쉽게 죽지 않을거야. 나는, 적어도 카게야마가 죽을 때 까지는 함께 있을게. 그러니까,


  - 네 시간을 그렇게 잃어가면서 까지 모든걸 반복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 얘기를 마지막으로 카게야마가 훌쩍이는 소리가 멈췄다. 처음엔 가만히 듣고만 있더니 그제야 잠에 든 듯 보였다. 며칠 동안 수없이도 많은 시간 이동을 하면서 카게야마는 지칠대로 지쳐있었겠지. 그리고 자신도 모르던 그 수십 년을 오가면서 얼마나 많은 마음 고생을 했던걸까. 카게야마만큼 희생이 크지 않은 능력을 가진 스가와라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정도의 감정 소모가 분명했다. 가장 엷은 빛을 만들어 잠든 카게야마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스가와라는 그를 제 품으로 끌어당겨서 또 다시 아까처럼 다독여주었다. 그러고선 속으로 전했다.


  세상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해. 우리의 능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우리의 사랑도 마찬가진 거 같아, 카게야마. 그렇게 네가 시간을 반복해서 돌리고 또 돌려도 결국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 세상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긴 마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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