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Frederic Chopin - Prelude in E-Minor (op.28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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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시한부 인생이었어. 내가 죽인 사람들도, 나도. 모두 정해진 운명 속에서 그저 죽기 위해 살아가는 거야. 오이카와는 책상 위에 놓인 초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조금 전까지 가슴에 품고 있던 성냥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로 흠뻑 젖어 제 삶의 의미를 잃었다. 제구실을 못 하는 건 의미 없어. 흔들리는 손으로 성냥을 긁어내다 저 멀리 던져버리고서 찾아든 것이, 언젠가 흡연할 때 썼을 싸구려 일회용 라이터였다.

  힘들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걸 나는 줄곧 바라왔어. 비록 일회용일지라도. 심지에 불이 점화되고, 가해지는 열에 초가 점점 줄어드는 걸 보며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향해 번복했다. 손가락에 힘을 덜 들여도, 손이 이렇게 피로 적셔져 있어도, 부싯돌은 제 역할을 다하니까 말이야. 카게야마는 의미 모를 그의 문장에 당황했다. 지금 어떤 몸을 하고 저렇게 태연하게 촛불을 밝힐 수 있는 건지. 그의 당황스러움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기름 냄새가 몸속으로 침투했다. 카게야마는 헛구역질을 했다.

  각종 서류가 널부러진 바닥 위로 오이카와는 기름을 흩뿌렸다. 빛바랜 기름통이 제 속을 울컥 쏟아낼 때마다 카게야마의 눈물샘도 왈칵 눈물을 머금었다. 오이카와의 전신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많은 탄알을 받아내었던 건지, 곱게 다려 입었던 흰 셔츠가 흔적도 없이 짙붉어진 걸 그 어둠 속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오이카와는 온몸에 구멍을 낸 채로 비틀거렸다. 괴적한 분위기 속에서 비문鼻門을 통해 스며드는 핏비린내와 기름 냄새, 눈앞에 방울방울 흩어지는 먼지를, 카게야마는 외면하기 위해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문득 두 사람의 계약서 위에 쓰여있던 사자성어 하나가 떠올랐다. 물론 공식적인 것도 아니었고, 그저 가출한 카게야마가 어떻게든 오이카와의 곁에 있고 싶어 그에게 요청했던 비공식적인 서류였다. 의미 모를 말들을 써내려가던 그때의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 지장을 요구했고, 카게야마는 글을 읽지도 않은 채 흔쾌히 엄지손가락을 들이밀었다. 어느 글도 사랑보다 앞서지 못해요. 순진한 카게야마는 배시시 웃으며 그렇게 말했더랬다.

  그게 이제야 기억난 것이었다. 지금의 카게야마는. 사랑 앞에서 무의미했던 수많은 한자 속에서 그 사자성어를, 오이카와의 피 흐르는 눈에서 읽어내었다.

  그러니까 돌아가야지, 도련님. 이제 집으로 그만 돌아가. 짧은 비행非行은 여기서 끝. 그대로 여기서 걸어나가 집으로 돌아가. 그럼 토비오 쨩이 나와 했던 짓은 모두 부모님이 어떻게든 해결해줄 거야. 너희 집, 잘 살잖아? 똑같은 셔츠를 매일같이 입지 않아도 되고, 퀘퀘한 먼지 속에서 잠들지 않아도 되고, 굶지 않아도 돼. 힘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야. 토비오 쨩도 잘 알고 있잖아. 마음만 먹으면 돌아갈 수 있다고.

  증발해버리는 기름 냄새 위로 오이카와는 몇 번이고 층을 쌓아 올렸다. 무저갱도 같은 어두운 밤에 오이카와는 지속해서 어둠을 쏟아냈다. 썩어버린 각목, 다 헤진 소파 커버, 페인트 부스러기, 그리고 두 사람의 추억이 담긴 사진 위에도. 그 어둠 속에서 카게야마는 두 사람이 함께 했던 흔적을 좇았다. 이것만큼은, 남겨 줄 수 있는 거잖아요. 사진 만큼은.


  "아니."


  단호한 그 한 마디가 두 사람 사이의 정적에 스며들었다. 너만 위험해지니까 허튼 짓 하지 말고 얼른 나가. 이제 오이카와 씨는 잘 거야. 내일 아침에 굳이 깨우러 오지 않아도 돼. 그냥 깨우지 말고, 너도 너희 집에서 돌아가 푹 쉬어. 힘을 잃은 다리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오이카와는 책상 위에 두었던 초를 손에 넣었다.


  "왜 안돼요? 왜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 거죠?'

  "말도 많다, 너."

  "나도, 그냥 나도 같이 갈래요. 나도......"


  멀리 안 가. 그냥 여기 있을 거야. 무슨 염치로 내가 멀리 떠나겠어. 살인청부업자 주제에. 태초부터 이미 정해진 인간들의 운명을 내가 거두는 거라고 늘 얘기했지만, 그거 사실 엄청 죄책감 느끼는 일이야. 힘들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내 몸도 이제 제 할 일을 다 한 거겠지. 아, 힘 빠져. 이렇게 해서 칼은 어떻게 들고, 총은 어떻게 장전해. 이제 말 할 힘도 없는데. 제구실을 못하는 건 의미 없어. 토비오. 그리고 이제 그런 오이카와 씨에겐 너도 필요없는 존재야.


  "그러니까 도련님은 이제 돌아가."


  그 말을 끝으로 오이카와는 기름 위로 불빛을 분산시켰다.

  눈앞의 광경이 뜨거운 열기로 박제되고, 카게야마는 저 깊은 속에서 밀려오려는 뜨뜻한 것을 참으며 뒷걸음질 쳤다. 함께한 지난 일 년간, 아니 그는 평생 제대로 눈 한 번 감아 보지 못했을 터였다. 의도적으로 암살을 위해 길러졌던 오이카와 토오루는, 늘 불면에 시달려야 했고, 그걸 카게야마는 지난 일 년간 옆에서 지켜보며 그 사실을 학습했다.


  아, 오이카와 씨. 자러 가는 거구나.

  번지는 불길은 마음의 점화선을 따라 흘렀다. 카게야마는 헤진 벽에 기대어 그의 영원한 수면을 응원했다. 두 눈을 감고 꿈의 세계로 떠나려는 오이카와는 마지막까지도 카게야마에게 전했다.

  돌아가. 이제 계약 종료. 사필귀정. 


  하지만 카게야마는 끝내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 시도조차 보이지 않았다. 날 데리고 왔으면, 나를 안아줬으면 끝까지 책임져야죠. 어느 것이 나를 위한 '바른 길'인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야, 오이카와 씨는. 그저 벽에 기대어 앉아 잠이 든 그에게 마지막 자장가를 불러줄 뿐이었다. 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피아노 곡은 쳐줄 수 없지만 노래만큼은 불러 줄 수 있었다. 


- 사랑하는 사람이여, 아주 사소한 소망 같은게 나에겐 있었어요.


  소망燒亡1하는, 당신 곁에서 언제나 함께 하는 아주 사소한 그런 소망所望이.




1 소망燒亡: 불에 타서 없어짐. 또는 그렇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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