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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니미 아키라는 죽을 만큼 해보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죽는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어 어감도 좋지 않을뿐더러 그 속에 내포된 뜻은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나 무뚝뚝한 태도로 모든 걸 일관하던 쿠니미는 코치나 선배들로부터 ‘쿠니미, 죽도록 좀 노력해봐라!’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죽일 듯이’ 노려보곤 했다. 킨다이치는 그런 쿠니미의 표정변화가 마냥 재미있기만 했다.

  어이, 킨다이치. 쿠니미의 건조한 목소리가 뒤에서 울려 퍼졌다. 뭐 하나만 물어보자. 그 말에 뒤를 돌아보니, 가쿠란 차림의 녀석이 삐딱한 자세로 서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품에 안고 있는 상자가 무거워 비스듬히 서있는 거였지만.


  “졸업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볼래.”

  “뭔데?”


  대체 죽을 만큼 하라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어? 그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담임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하나 떠올랐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잘들 지내고, 아무리 힘들어도 죽기 살기로 하면 안 될 게 없을 거야. 킨다이치 본인을 포함한 다른 학생들은 그저 대수롭게 여겼을 단어 선택이었을텐데도 쿠니미는 그걸 또 신경 쓰고 있었나보다. 킨다이치는 뭐라 대답해야할지 몰라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


  “어? 그, 그냥… 그만큼 열심히 하라는 건 아닌가? 죽을 정도로, 목숨을 마칠 정도로 열심히 해보라는 거……”

  “꼭 죽을 정도로 티를 내야지만 잘 되는 건 아니지 않아? 마지막 까지 듣기 싫은 말만 한단 말이야. 코치도, 선생님도, 그리고 그 녀석도.”


  그 녀석이라는 말에 킨다이치는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3초 뒤에 다시 들고 있던 책을 가방에 우악스럽게 쑤셔 넣기 시작했다. ‘그 녀석’이 누군지 두 사람 모두 제대로 콕 찝어서 말하진 않았지만, 쿠니미의 한 마디를 따라 각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분명 동일인물일 터였다. 킨다이치는 인상을 쓰고 아무 말 없이 계속해서 자리를 정리했고, 쿠니미도 제자리로 돌아가 1년 동안 남겼던 추억의 흔적을 지워나갔다.



  ‘그 녀석’의 말버릇이었다. 좀 제대로 해봐. 하면 할 수 있잖아. 죽을 만큼 노력해보란 말이야. 왜 진심을 다해서 하지 않는 거야? 너는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매번…… 카게야마에게 듣는 말 중에서 저 말이 가장 싫었다. ‘죽을 만큼’이라는 말이.

  매사에 무심하고 크게 반응 보이지 않는 쿠니미는 꼭 저 단어에만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물론 큰소리를 치지도 주먹을 날리는 정도로 화를 내는 건 아니었지만. 그 말을 뱉어놓고선 왜 화내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카게야마를 향해 더 얄궂은 표정을 지어 보내곤 했다.

  언젠가 킨다이치는 쿠니미에게 물었다. 그게 그 정도로 싫을 말인가? 그냥 너답게 넘기지 그래. 하지만 쿠니미는 크게 질색하며 빨리 하라고 재촉하는 것 다음으로 싫다며 먹던 캐러멜까지 테이블 위로 떨어뜨렸다. 그 반응이 제법 웃겨 크게 비웃었더니 돌아오는 건 또 다른 잔소리였다. 킨다이치는 쿠니미의 그런 반응이 아마 카게야마 때문일 거라고 예전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다. 처음 만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마냥 올곧지만은 않은 성격 때문에 주변에 제법 적을 많이 만들었던 쿠니미였지만, 아무리 욕을 들어도 무표정으로 나 몰라라 무시하곤 했는데. 사이가 나쁜 사람들의 반응 중에서도 유독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카게야마였다.


  “쿠니미. 그러고 보니 이제 이 교실도 안녕이네.”

  “그래. 내일이면 졸업이니까. 졸업식만 오면 끝이라고, 지긋지긋한 중학교 생활도.”

  “맞아. 지금 와서 말하는 거지만 우리 학교 시설 좀 많이 별로야. 춥고, 더럽고…… 아오바죠사이는 건물도 새로 지었고 사립이니까 훨씬 좋겠지.”

  “물론.”


  쿠니미는 졸리다는 듯 나른한 표정으로 킨다이치를 향해 웃어 보이더니 이만 나가보자며 고갯짓을 했다. 킨다이치는 그 말에 마찬가지로 웃으며 가방을 매고, 각종 물건이 들은 상자를 들고 일어섰고, 먼저 교실을 뜬 쿠니미의 뒤를 따랐다.

  올해는 벚꽃이 좀 빠르더라. 정말 다행인 건 꽃잎 날린 걸 이제 우리가 청소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지. 킨다이치는 신난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복도를 걸었고, 쿠니미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아무 말 없이 앞서 걸었다. 이제 정말 안녕이었다. 여름에는 미칠 듯이 덥고, 겨울에는 미칠 듯이 추웠던 학교 건물과도 안녕, 매번 지기만 해서 속상했던 배구팀과도 안녕, 복도에서 조금 뛰었다고 벌점 줬던 영어 선생님과도 안녕, 정들었던 교실도 안녕. 그리고 무엇보다도 카게야마 토비오와 안녕할 차례였다.

  “집 가는 길에 뭐라도 사먹을까? 돈 별로 없…”

  “킨다이치.”

  “어?”

  “카게야마는 어디로 간댔어?”


  ……세이죠는 아닐 거 아냐. 쿠니미의 갑작스런 질문에 킨다이치는 발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쿠니미는 계속해서 걸어갈 뿐이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늦은 오후 햇살과 함께 머무르는 복도 위를, 차분하게 소리 없이 걸었다.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고 난 후로, 평소에 카게야마에 대한 이야기를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했던 쿠니미였기에 킨다이치는 더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째……. 의아한 표정으로 쿠니미의 앞서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몰라~? 알 바 아니지. 그 녀석이 어딜 가든 신경 쓸 필요 없어. 확실한 건 아오바죠사이는 아니겠지. 시라토리자와 붙었으면 그쪽 가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고…….”


  그렇게 말하면서 킨다이치는 조금 울컥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까지 이런 결말을 맞이하고 싶진 않았다. 아무리 사이가 틀어졌어도 언젠가는, 적어도 졸업하기 전까지는 예전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같이 서로의 집에 갈 정도로 친하진 않아도, 배구 연습이 끝나면 같이 집에 가면서 좋아하는 만두를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말이다. 하지만 이게 뭐야. 사이 나쁜 채로 끝이 나버렸잖아. 이제 이렇게 졸업해버리면 언제 또 대화해보겠어. 코끝이 찡해지면서 자꾸만 눈물이 새어나오려 하기에 킨다이치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


  앞에서 잘만 걷던 쿠니미가 멍하니 멈춰서서는 창밖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벚꽃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운동장에서 뛰놀고 있는 후배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건지. 킨다이치는 옆으로 돌아간 쿠니미의 시선을 따라 그가 보고 있을 만한 것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엔 카게야마가 서있었다. 

  2층 복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면 보이는 까만 머리의 카게야마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갓 입학했을 때보다 많이 성장해 가만히 있어도 훤히 드러나는 손목부터, 언제 다듬었을지 모르지만 늘 단정한 뒷통수까지. 그리고 얼핏 보이는 콧대도 카게야마의 것이었다. 쿠니미는 그런 카게야마를 보고 있던 것이다.


  “쿠니미.”

  “…….”


  그런데 그런 쿠니미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져있었다. 아무 대답도 없는 쿠니미의 그런 표정이 속상했던 킨다이치는 도리어 본인이 눈물을 보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울지 말아야지, 왜 울어. 왜 우냐고. 바닥에 상자를 내려놓고 삐져나온 카디건 소매로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하지만 눈물과 콧물은 멈추지를 못했다. 속상함, 서러움, 그리고 알 수 없는 화가 멈출 줄을 모르고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엉엉.

  그런데 그 소리는 본인의 것이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 쿠니미를 바라보았다. 그야 말로 울고 있었던 것이다. 엉엉, 서럽게.


  “야…… 너는 또 왜 울어…….”

  “있잖아…… 킨다이치.”


  쿠니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뜨거워진 두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처럼 한 마디씩 뱉어냈다. 나는 말이야, 다시는 바라지 않을 거야. 카게야마 녀석이랑 다시 친구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절대로 소원 빌지 않을 거고 생각지도 않을 거야. 이제 졸업하니까, 고등학교에 들어가니까. 서로 다른 학교에 가면 볼 일도 적어질 테고, 이젠 저 녀석에게 안 좋은 소리 들을 일도 없을 거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쿠니미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 큰 남학생 둘이 복도 위에 앉아서는 눈물 펑펑 쏟아내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든지 의아하게 볼게 뻔했지만, 이제 이 학교는 정말 안녕이니까. 킨다이치는 축축해진 손으로 제 눈가를 훔쳤다.


  “그런데 말이야.”

  “……어.”

  “난 왜 이렇게 눈물이 나고 속상한 걸까?”


  제대로 얼굴을 보이지 않던 쿠니미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려 킨다이치를 바라보았다. 3년 간 함께 지내오면서 단 한 번도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나…… 이제 그 녀석이 하던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아.”

  “뭐가?”

  “‘죽을 만큼’이라는 거.”


  쿠니미는 그리고서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손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고, 킨다이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섬세한 떨림을 두 눈으로 잡아내었다.


  “나, 나…… 그 녀석을…… 죽을 만큼,”


  쿠니미는 눈물로 말끝을 얼버무렸고 킨다이치는 제 얼굴도 마저 닦지 못했으면서 상자 속에서 꺼낸 티슈를 그에게 건네었다. 그리고서 또다시 눈물이 차오르기에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녀석과 같은 곳에서 보내는, 마지막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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