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Time - Inception OST (Piano ver.)

―오른쪽 클릭하고 연속재생

―쿠니카게 합작 참여: http://kunikage2.tistory.com/






  오랜만에 예전에 쓰던 노트북을 열었다. 그 애가 죽고 나서 단 한 번도 전원을 켜본 적이 없던 노트북이었다. 적지 않은 먼지가 자욱이 쌓인 이것은, 대학 시절 내내 모았던 돈으로 졸업하자마자 가장 처음으로 마련했던 물건이었다. 그래서 의미가 있었다.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그 애의 손을 잡고 갔던 전자상가에서 무슨 사이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부터, 처음으로 거금의 물건을 우리의 돈으로 샀다는 것까지. 그래도 곁에 있던 카게야마 앞에선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방전된 노트북은 고작 충전기 하나로 삶을 되찾았다. 제 기능을 온전히 수행해낼 수 있는 멀쩡한 존재가 된 것이다. 언젠가 그 애가 지문을 남겼을 전원 버튼 위에 내 지문이 내려앉았다. 그러자 비로소 노트북은 의미 있는 존재로서 죽음으로부터 회생의 기미를 보였다. 우린 그렇게 의미 있는 삶을 원했다. 국문학 전공이었던 우리는 모든 순간에서 의미를 찾았다. 소설 속 주인공이 내뱉은 대사, 복선으로 사용되었을 장치, 그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 보이지 않는 그 언어, 그 모든 것에 의미가 존재한다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을 해도 적어도 서로에겐 의미 있는 행동이 필요했고, 뜻이 담긴 한 마디를 갈망했다. 찰나의 입맞춤을 건네도 '사랑'이 담긴, 한 번의 포옹을 해도 '안정'을 주는.

  그래서 나는 그 애에게 묻고 싶었다.

  네 오랜 부재, 그 죽음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거냐고.


  존재의 의의를 잃고 방황하던 내게 손을 내민 사람들이 있었다.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언젠가 사랑하던 이의 자살을 경험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울지 않았다. 나도 있는 힘껏 그래 보았다. 어떻게든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상실과 고통만이 가득한 동굴 속에 막 떨궈진 나라는 인간과, 여전히 터널 속을 걷지만, 저 동굴 끝의 빛을 찾아낸 그들은,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다. 그들은 죽음이란 칼에 수도 없이 난도질당한 가슴을 품고서 이미 터널의 반은 지나온 자들이었다. 자살하기 전에 가능하다면 최대한 가장 보통으로 살아가고 싶었던 그들의 사랑했던 자들은, 남들 모르는 곳에서 죽음이란 칼을 갈고 또 갈아 남겨진 그들의 가슴을 끊임없이 난도질했고, 심장 부근을 시도 때도 없이 찌르던 그 칼은 이제 무딜 대로 무뎌져 의미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내 손에 쥐어 몸 정중앙을 향하고 있는 쇠붙이는 여전히 너무나도 견리했다. 그 애의 죽음은 여전히 뾰족하고 매서운 양상으로 나를 언제나 죽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들에게 남은 건 칼이 찌르고 간 자리에 선명히 남은, 또렷한 공허함. 우묵하게 패이다 못해 너덜너덜하게 뚫려 반대편이 훤히 보이는 그들의 가슴을, 온전히 메울 수 있는 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울지 않았다. 아주 평범하게, 보통의 언어를 구사하고 보통의 감정으로 보통의 삶을 살아가려 노력했다. 떠나간 자들이 그러했듯, 보통의 방법으로 터널을 걸어나가는 것이다. 때로는 텅 비어버린 가슴께를 어루만지며, 더이상 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지만, 최대한 서로에게 의지하며 그 틈을 메우며.

  하지만 어째서인지 부자연스러웠다. 공허함이란 곧, 무의미함을 뜻하는데.

  내겐 공허함―무의미함―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달렸다. 무리에서 벗어나, 힘차게. 동굴 속을.

  머리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었다. 시야를 가리는 편이 나았다.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것이 내겐 존재하지 않았으니. 나는 어딜 향해야 할지 몰랐고, 눈은 무엇을 보아야 할지 모른 채 방황했고, 내 사랑은 짝을 잃은 슬픔에 줄곧 바닥에 곤두박질치기만 했다. 하지만 심장은 쉴 새 없이 뛰었다. 녹이 슬어 버벅이는 나의 사고회로와 다 닳아버려 서로 연결되지 못하는 신경세포와는 다르게, 마치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듯. 마치 멈춤을 모른다는 듯. 자신은 이렇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 듯. 

  언젠가를 위한 죽음이란 칼을 그 애도 갈고 있었을 터였다. 몰래 그 짓을 반복하며, 가능하다면 가장 보통으로 보이고 싶었겠지. 어쩌면 그 애의 '의미'와, 나의 '의미'의 정의에 대해 논할 때 인상을 찡그리며 답을 하지 않았던 것도 예견된 죽음의 징후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죽음을 결심하기 전까지 최대한으로 칼 가는 소리를 냈는데도, 자살로 이끈 수많은 신호를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수많은 추측 속에서 나는 과연 확언할 수 없었다. 그 애가 추구하던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이었던 건지 단 한 번도 제 입으로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졸업 직후에 노트북을 샀던 일도, 곧장 떠났던 여행도, 산 너머 밤새 잠들어있던 아침 해를 맞으며 나누었던 서로의 온기도, 그리고 본인의 죽음도 그 애에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그 애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터널 속에서 나는 텅 비어버린 우리 둘만의 집을 발견했다. 적어도 내겐, 의미 있는 장소였다. 그 애가 좋아했던 체육관이 보이고 햇빛이 잘 들어왔던 그런 곳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그 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랜만에 예전에 쓰던 노트북을 열었다. 그 애가 죽고 나서 단 한 번도 전원을 켜본 적이 없던 노트북이었다. 언젠가 그 애가 지문을 남겼을 전원 버튼 위에 내 지문이 내려앉았다. 그러자 비로소 노트북은 의미 있는 존재로서 죽음으로부터 회생의 기미를 보였다.

  노트북 화면엔 덩그러니 문서 하나만 켜놓고서 나는 망설였다. 언젠가 죽음을 준비하며 그 애가 써내려갔을 이야기는 아직 마저 작성되지 못한 채 '무제 1'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었다. 죽음으로 완성된 그 애의 삶과는 다르게 이야기는 끝을 보지 못했다. 살아남은 나는 키보드 위에 열 손가락을 얹어보았다. 하지만 아무 내용도 써내려갈 수 없었다. 그 애가 전하고자 했던 글의 의미를 모르고, 죽음의 의미를 여전히 알 수 없었으니. 우리의 의미의 차이는 마치 삶과 죽음처럼 가까운 듯 멀기만 했다.

  자살이 그 애의 이유 있는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헤맬지 모르는 일이다. 내게 의미 있는 삶이란, 카게야마 토비오가 곁에 살아서 함께 모든 것의 의미를 찾아주는 삶이었으므로. 카게야마 토비오라는 나의 '의미'를 잃은 쿠니미 아키라는, 그 무리에서 뛰쳐나왔듯이 앞으로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할 터였다. 그저, 무의미하게 홀로 길고 긴 터널을 달리며, 주인의 사정은 몰라주는 심장 박동을 느낄 일만 남은 것이었다.


  결국, 남겨진 자를 위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허전하게 뻥 뚫린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손을 넣고, 본인의 심장은 계속 뛰고 있음을 느껴야 할 뿐. 남은 삶을 떠나간 자의 죽음의 의미를 찾는 데 쓰리라고 믿기만 할 뿐.

  나는 그 애에게 묻고 싶었다.

  너는, 우리의 의미의 차이가 너의 죽음으로 비로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음을 아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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